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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리투아니아 여인 - 이문열 지음

관리자 2011-11-14 19:58:43 5660

   거장 이문열의 귀환!
   리투아니아 여인 
   이문열 (지은이) | 민음사 | 2011-11-11


   판매가 : 11,500원 → 10,350원 (10%,1,150원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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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작품 구상에서 집필까지 18년이 걸린 이문열의 장편소설. 한국인이자 미국인이며 리투아니아인이기도 한 그녀, 뮤지컬 음악 감독 김혜련. '다국적 정체성'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녀의 타오르는 예술혼과 다문화적 사랑, 그리고 디아스포라의 운명에 맞서 피와 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시대의 유목민적 생애가 슬프도록 아름답게 그려진다.


주인공 김혜련의 할머니는 1940년대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병합될 당시 둘째 딸만 겨우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했다. 미국에서 자란 혜련의 어머니는 대학에서 각국의 민속음악을 공부하던 중 축제 때 '아리랑'을 부른 것을 계기로 같은 학교 학생이었던 혜련의 아버지와 결혼해 혜련을 낳았다. 이렇게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혜련은 한국과 미국에서 자라며 다국적 정체성을 갖추게 된다.


코카서스 인종의 용모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국적인 외모, 그리고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지닌 김혜련은 뮤지컬 음악 감독으로서, 또한 시립 교향악단의 지휘자로서 시대의 명사가 되어 각종 광고와 매스컴을 장식하며 화려하게 부상한다. 소설은 그녀의 불꽃같은 사랑과 3년 만의 파경, 그리고 눈부신 성공 이면의 좌절을, 또다시 이 땅을 떠나고야 마는 고독한 유목민적 예술가의 모습으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작가 이문열은 <리투아니아 여인>을 통해 "피와 땅이 더 이상 개인의 정체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21세기적 현실"을 지적하며, 태생과 인종, 지역이나 국경을 넘어선 다국적 정체성에서 비롯된 21세기적 정체성의 혼란상 및 그렇게 성장한 고독한 예술가의 유목민적 모습을 오롯이 보여 준다.


<줄거리>


새 아파트로 이사한 첫날 밤, ‘나’는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문득 십자가들의 언덕을 찍은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나는 그 사진으로부터 기억 저편에 존재하던 갈색 눈에 금발 머리를 땋아 내린 열한 살짜리 이국 소녀를 떠올리게 된다.


30여 년 전, 부산에서 재수를 하던 나는 동네에서 서양인이 사는 집 앞을 지나칠 때마다 그 집 아이들이 노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진한 부산 사투리를 쓰는 금발 머리 소녀는 동네 아이들과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를 하며 곧잘 어울렸다. ‘혜련’이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어느 날 친구들에게 심한 따돌림을 당했다. “이 코쟁이 가시나야, 인자 고마, 너 나라 돌아가거라이. 가서 다시는 오지 마래이.” 이후로 ‘혜련’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닌 그 소녀를 보지 못했지만, 소녀는 내 기억 속에서 음악 책에 나오는 ‘금발의 제니’로 각인되었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부산의 작은 극단에서 무보수 조연출로 일하고 있던 나는 음악 스태프를 모집하던 중에 지원자로 온 혜련과 조우한다. 그리고 다시 몇 년 후 서울의 대학로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을 계기로, 2년 후 서울에서의 첫 연출 작품을 혜련과 함께 무대에 올리며 나와 혜련은 연출가와 음악 감독으로서의 인연을 이어 가게 된다.


나는 혜련으로부터 리투아니아와 모계의 이산(離散) 역사를 듣는다. 혜련의 할머니는 1940년대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병합될 당시 둘째 딸만 겨우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했다. 미국에서 자란 혜련의 어머니는 대학에서 각국의 민속음악을 공부하던 중 축제 때 「아리랑」을 부른 것을 계기로 같은 학교 학생이었던 혜련의 아버지와 결혼해 세 남매를 낳았던 것이다.


혜련은 몽골리안을 강조한 듯한 얼굴 윤곽의 키가 큰 음악가와 사랑에 빠지지만, 불과 3년 만에 이혼하고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간다. 그동안 연출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나 역시 결혼과 이혼을 경험한 후, 실의에 빠져 방황하다가 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공부하기 위해 극장가를 순회하던 중 혜련과 또다시 운명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와 혜련은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이후 혜련은 뮤지컬 음악 감독으로서, 또한 시립 교향악단의 지휘자로서 시대의 명사가 되어 각종 광고와 매스컴을 장식하며 화려하게 부상한다. 그러나 스캔들이 터지며 그녀의 이중국적을 문제 삼는 이들에게 비난당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의 언어적 폭력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계속해 간다. 추락의 쓴 잔을 마시며 방황하던 그녀는 결국 예술가로서의 유목민적 정체성을 찾아 한국을 영영 떠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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