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은이) | 문학동네 | 201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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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김영하식 슬픔의 미학, 고아 트릴로지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단 17년차, 이제 마흔 중반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영하의 이름 앞에는 ‘젊은’ ‘파격적인’ ‘도발적인’ 등과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아마도 그것은 ‘배반’ 때문일 것이다. 그는 새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수많은 독자의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늘 그런 기대를 나름의 방식으로 배반해왔다. 엄숙함이 절대적인 미덕이라 여겨지던 때에는 입꼬리를 한쪽만 올리고 웃는 것밖에는 모르는 반항아마냥 발칙함과 날카로운 유머를 선보였고, 그러한 작가적 이미지가 굳어질 즈음에는 정색을 한 채 엄격하고 진중한 작품을 들고 나타났다. 그것은 꼭 날렵한 펜싱 선수의 검술, 그중에서도 가장 과격하며 빠르게 진행되는 사브르 선수의 검술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역설적이지만, 독자는 그로부터 기꺼이 배반당할 것을 기대하며 그의 작품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작가가 5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검은 꽃』 『퀴즈쇼』를 잇는 ‘고아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이다. 스스로 우울 속으로 걸어들어가서 쓴 고아들의 이야기, 커튼을 내린 방안에서 녹음된 빗소리를 들으며 골방에서 써내려간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기저에는 슬픔의 덩어리가 몸을 낮추고 한껏 웅크리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독자가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갈 때마다 아주 조금씩 몸을 일으키면서 실체를 드러내고 어느 순간 독자를 슬픔으로 물들인다. 그리하여 독자는 이 슬픔과 한 덩어리가 되고 만다. 눈물 흘리는 장면 하나 없이 이루어내는 슬픔의 미학, 이것을 김영하식 슬픔이라고 부를 수밖에는 없겠다.
고아 쌍생아 제이와 동규, 그리고 고아들의 이야기
무엇보다 이 소설은 두 명의 고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저 제이가 있다. 광신도와 남창, 걸인과 사기꾼이 부유하는 고속터미널의 화장실에서 태어난, 그 역시 고아였을 십대 소녀로부터 잉태된 제이. “나는 길과 길이 만나는 데서 태어났대. 앞으로도 계속 길에서 살게 될 것 같다는, 그런 예감이 있어.” 제이는 스스로를 이렇게 요약한다.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야생의 길에서 생존해야 하는 제이는 자신과 같이 세상으로부터 발길질당한 고아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었어. 성난 개떼처럼 으르릉거리기는 했지만 막상 내가 다가가면 꼬리를 내리고 받아줄 것 같았어.”
그리고 생의 한순간 그런 제이와 운명처럼 맺어져버린 동규가 있다. 부모의 결혼식을 촬영한 비디오를 보면서 “내가 ‘없는데도’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없기 때문에’ 행복한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아이,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스스로를 불청객이라 칭하는 또다른 고아 동규는 한때 함구증을 앓으며 제이와 단단히 결합되어 있었다. 말하지 못하는 그 대신 제이가 그의 속내를 읽고 사람들에게 번역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꿈같은 영혼의 결합은 오래가지 못한 채 깨어지고, 그후 동규는 제이를 기억하고 재구성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제이와 동규 이 두 명의 고아, 그리고 그들이 야생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 고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동규가 제이의 흔적을 이어붙여서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들어낼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제이의 분노와 동규의 비애, 그리고 고아들의 폭력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버려진 자들의 슬픔에서 비롯된 삶의 방식임을 알게 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그것은 ‘기억함‘이 아니라 ‘기억됨’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제목으로부터 동명의 노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겠다. 너의 목소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너의 목소리에 들린 자의 괴롭지만 달콤한 고통을 호소하는 노래 말이다. 그러니까 기억이란 스스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무언가에 들리듯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 즉, ‘기억함’이 아니라 사실 ‘기억됨’이라는 것,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이처럼 강렬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이의 목소리를 듣고 그를 기억하는 이는 동규만이 아니다. 한때 제이와 스친 적이 있는 다른 인물들 또한 화인(火印)처럼 남겨진 제이의 자국을 아프게 들추어본다. 길 위에 서 있던 제이를 발견한 순간부터 그에게 빠져드는 목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제이를 추적하는 게이 경위 박승태, 제이에게 집과 먹을 것을 내어주고 자신의 유방암 사실을 고백하게 되는 Y까지,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로부터 제이가 환기시킨 그들 존재의 비극을 엿보게 된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은 결국 그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지 않은가.
고아들의 존재 증명, 광복절 대폭주
무엇보다 이 장면을 놓칠 수 없겠다. 제이는 고아떼를 이끌고 광복절 대폭주를 감행한다. “그럼 우리가 느끼는 건 뭐야? 분노야. 씨발, 존나 꼭지가 돈다는 거야. 그래, 우리는 열받아서 폭주를 하는 거야. 뭐에 대해서? 이 좆같은 세상 전체에 대해서. 폭주의 폭자가 뭐야? 폭력의 폭자야. 얌전하면 폭주가 아니라는 거지.” 종묘에서 테헤란로로 이어지는 고아들의 존재 증명! 고아떼는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방식으로 도심 한복판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슬픔 그 자체라 슬픔을 모른다. 그리하여 다만 이렇게 분노의 폭주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아마도 저 멀리 하늘에서 내려다보았다면 이들의 모습은 불길이 번져나가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그러나 김영하는 롱숏을 택하지 않고 쫓고 쫓기는 디테일들을 모두 잡아냄으로써 이 미친 존재 증명의 불길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경찰을 따돌리고 질주하는 제이와 고아떼, 묘한 흥분으로 그들의 뒤를 쫓는 승태, 그리고 한때 오토바이 폭주족이었던 이들이 벌이는 자동차 폭주까지, 이 엄청난 해방의 불길 속에서 독자들은 오래전에 사그라들었던 불씨가 작게나마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깨달으리라, 그 불씨는 슬픔이 잉태한 것임을.
슬픔과 한 몸이 됐을 때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 존재는 모두 고아와 같다는 사실을.
우연일까. 등단 17년차를 맞이하는 김영하는 17세 고아 소년의 삶과 죽음을 다루면서 자신의 소설 세계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세련된 형식적 완결성을 택하는 대신 제이와 스치고 제이에게 들린 인물들의 시점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나란히 연결해놓음으로써 목소리들이 서로 울리도록 만들어놓았다. 마치 마주 세워놓은 거울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내부에서 자꾸 증폭되면서 독자들을 혼란시킨다. 독자는 의문에 사로잡힌 채 끊임없이 묻게 될 것이다. 제이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어찌하여 인물들의 고백은 제이를 더욱더 비밀스럽게 만드는가? 하지만 그 물음을 진득하게 앓게 된 자가 도달하는 곳은 제이의 정체가 아니라 바로 슬픔이다. 상처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다.
이제 우리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오토바이의 굉음을 듣게 될 때, 무연히 바라보며 그것을 스쳐가는 대신 이 가련한 고아들을 떠올리리라. 슬픔이 슬픔인줄 모르고 아파하며 분노하던 영혼들을 생각하게 되리라. 그리고 또 어쩌면 떨리는 목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난 요즘 자주 아파. 심장을 걸레처럼 누가 쥐어짜는 것 같아.” 심장을 움켜쥐며 고통을 호소하던 제이. “기쁨도 느끼지. 그들이 행복해한다면. 그런데 기쁨의 순간은 흔치 않아. 대부분은 고통이야.” 오로지 고통만을 느끼느냐는 동규의 물음에 너무도 희미하게 기쁨의 흔적을 말하던 제이.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손이 닿는 곳마다 아픈 까닭은 바로 자신이 아프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햇빛을 가리고 빗속으로 걸어들어간, 작가가 우리에게 속삭인다. 우리 존재가 바로 고아와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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