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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삼고초려(三顧草廬)

三顧草廬(삼고초려)

①임금의 두터운 사랑을 입다라는 뜻

②인재를 맞기 위해 참을성 있게 힘씀

 

석 삼

돌아볼 고

풀 초

농막집 려(여), 창 자루 로(노)

 


유래)

 

후한 말엽, 유비는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한실 부흥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군기를 잡고 계책을 세워 전군을 통솔할 군사가 없어 늘 조조군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느 날 유비가 은사인 사마 휘에게 군사를 천거해 달라고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복룡이나 봉추 중 한 사람만 얻으시오."   "대체 복룡은 누구고, 봉추는 누구입니까?"

그러나 사마휘는 말을 흐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 제갈 량의 별명이 복룡이란 것을 안 유비는 즉시 수레에 예물을 싣고 양양 땅에 있는 제갈량의 초가집을 찾아 갔다.

그러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또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하고 없었다.

"전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그 자는 아직 나이도 젊다던데..."

"그까짓 제갈 공명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마침내 동행했던 관우와 장비의 불평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엔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방문길에 나섰다.

 

그 열의에 감동한 제갈량은 마침내 유비의 군사가 되어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 후 제갈량의 헌책에 따라 위나라의 조조, 오나라의 손권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하고

한실의 맥을 잇는 촉한을 세워 황제를 일컬었으며, 지략과 식견이 뛰어나고

충의심이 강한 제갈량은 재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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