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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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縱七擒 |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준다 (七일곱칠,縱놓을 종,七일곱 칠,擒사로잡을 금) |
상대를 마음대로 다룸을 비유하거나 인내를 가지고 상대가 숙여 들어오기를 기다린다는 말. |
유래
제갈량(諸葛亮)이 맹획(孟獲)을 사로잡은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음대로 잡았다 놓아주었다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칠금(七擒)'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삼국지(三國志)》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삼국시대 촉한의 제1대 황제인 유비는 제갈 량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세상을 떠났다.
제갈량은 후주인 유선을 보필하게 되었는데, 그때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위나라를 공략하여 생전의 유비의 뜻을 받들어야 했던 제갈 량은 먼저 내란부터 수습해야 했다.
유선이 아직 어리고 철이 없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한 제갈 량은 적진에
유언비어를 퍼뜨려 이간책을 썼다.
과연 반란군은 자중지란을 일으켜 서로 살육을 일삼았다.
그 결과 마지막으로 등장한 반란군이 바로 맹획이라는 장수였다.
맹획이 반기를 들자 제갈량은 노강 깊숙이 들어가 그를 생포했다.
제갈량의 계략에 걸려들어 생포된 맹획은 분함을 이기지 못했다.
맹획을 생포한 제갈량은 오랑캐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그를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해 촉한의 무장인 마속도 '용병의 도리는 최상이 민심을 공략하는 것으로, 군사전은
하책일 뿐 심리전을 펴 적의 마음을 정복하라'고 했다.
제갈 량은 오랑캐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면 그들의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북벌도 한
결 용이할 것이라 생각하여 맹획을 풀어주었다.
고향에 돌아온 맹획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제갈량은 자신의 지략을 이용하여 맹획을 다시 사로잡았지만 또 풀어주었다.
이렇게 하기를 일곱 번, 마침내 맹획은 제갈량에게 마음속으로 복종하여 부하 되기를 자청했다.
여기서 '칠종칠금'이란 말이 나왔으며, 오늘날 이 말은 '상대편을 마음대로 요리한다'는 뜻으로 비유되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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