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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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이 세월을 낚는 상중마을
충북 진천과 경기도 안성시의 접경지로 안성시에서 15km이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속리산 연맥으로 충북 진천과 안성시의 접경 덕성산에서 삼파로 나눠져 서쪽 줄기는 서운산(해발 547m)과 마이산(해발 471m)을 북쪽면에 위치하고 있다.
서운산 아래 북동쪽으로 자리잡은 금광면 상중리는 서운산내에 신라시대 고찰인 석남사와 마애석불의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계곡의 수량은 많지 않으나 정연한 계곡을 연출하므로써 여름철 피서객 뿐만 아니라 봄, 가을로 등산객들이꾸준히 찾아오는 실정이다. 또한 주변 중앙CC과 천주교 성지인 배티성지가 있으며 대상지와 인접한 마둔저수지는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한 낚시터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편이다.
찾아오시는 길
경부고속도로 안성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안성시내 방면 국도38호선으로 진입하여 장호원 방향 이정표를 따라 약 16㎞쯤 오면 안성시내에 도착하게 된다.
시내에서 서운·입장방면 이정표를 따라 200m쯤 가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옥천교를 건너 진천방향으로 가다보면 마둔 호수를 지나 상중리 마을에 이르게 되며 대중 교통으로는 시내에서 버스가 1일 30분에서 60분간격으로 15회 운행하고 있다.
가 볼만한곳
소개 : 죽주 산성(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산106)
1973년 7월 10일 경기도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되었다. 성둘레1,688m, 높이 2.5m의 토석성으로 현재 석축만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 처음 축성된 것으로 알려지며 고려시대에 크게 중수하였다. 성의 이름은 죽산의 옛이름 죽주에서 유래하며 신라후기 진성여왕 때 견훤이 이 성에 진을 치고 세력을 키웠다.
고려시대인 1236년(고종 23) 몽고군의 제3차 칩입 당시에는 방호별감(防護別監) 송문주(宋文胄)가 성 안에 피난해 있던 백성들과 합세, 몽고군과 싸워 이긴 전적지이다. 조선시대에도 청주와 충주의 두 길이 만나 서울로 통하는 요지인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강조되어 성을 보수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여기에 진을 치기도 하였다.산성은 3겹 석성으로 본성 1,688m, 외성 1,500m, 내성 270m에 이른다. 성 안은 넓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의 동문자리에 장대석과 석재의 흔적이 있고 성 남쪽에는 장대지(將臺地)와 문터가 남아있다. 남쪽 성벽과 동쪽 성벽의 북쪽 끝에는 성벽 양쪽 끝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치성(稚成)이, 남쪽 성문 바깥에는 당시에 팠던 도랑 자리가 남아 있다. 성 안에는 몽고 침입때 큰 공을 세운 송문주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 있고, 함께 싸우다 죽은 군민들의 넋을 기리는 당집이 있다
소개: 당간지주(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728)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당이라는 깃발을 걸게 되는데, 이 깃발을 꽂는 길다란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 쪽에서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일컫는다. 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 당간지주만이 남아있다. 이 당간지주는 고려시대 대사찰이었던 봉업사터에 안성 죽산리오층석탑(보물제435호)과 약 30m 거리를 두고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원래 이곳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80년에 복원하였는데, 남쪽 돌기둥은 윗부분의 4분의 1정도가 이미 깨진 상태이다. 돌기둥은 표면이 거칠고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꼭대기의 바깥쪽 모서리를 둥글려 완만하게 다듬었다.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홈을 파놓았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형태로, 안성 죽산리오층석탑과 같은 시대인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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